서른다섯에 처음 나의 공간을 얻었다.

 작가에게 공간은 단지 작업을 하기 위한 활동면적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오래된 집, 폐허에 가까운 옛 집 
 ‘꼴도방’은 내 젊은 날 유일한 피난처로서 작업실이자 집이 되어 주었다.
 입시생활 고시원과 화실에서의 쪽잠생활, 대학시절 지하작업실에서 무엇이 되어 보겠다고 작업복 옷가지 모아 추위 버티던
 날들이..., 아! 홀로인 낡은 방 한켵 이라도 따스하고 자유롭다.


 나는 살았다.
 외로움에 살았고 사람을 바라보며 살았다.
 건강하지 못한 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내 몸 네 몸 가리며 살았던 그 동안의 어리석음에 미안하여 숨 쥐이고 살았다.  친구들 논다하는 소식에 달려도 가고 싶지만  
 ‘자고 걷고 일하고, 자고 걷고 일하고’ 어렵게 얻은 평화를 깨고 싶지 않다.   
 겨울밤, 작업실 유리창에 비친 작업하는 내 모습과 내리는 눈이 함께 보인다.
‘어디 도망갈 때 없나’   포기와 바꾼 담배 한 모금이 유리창에 더해져서 작업은 이어간다.
 그래도 어둔 밤 유일한 불빛 창 아래에서 흙일하는 젊은이가 사랑스럽게 보여질 것이라 생각하니 버틸만 하다.

 
 야생고양이, 은빛족제비, 구렁이, 집 읽은 개, 반딧불, 정체모를 존재와 함께 했던 옛 작업실에서 나를 볼 수 있었고 그들을
 인정할 수 있었다.

 인정의 힘을 빌려 그들과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복잡한 세상사에 내 몸 맡길 처신의 방법을 나름 터득하였다.
 집은 그렇게 나를 살게 했다.

   2015년 새 작업실. 그 창에는 내가 비춰지지 않는다.
  작업실 창 너머 환하게 불 밝은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이 보인다.
  놀고 싶어 쪼르륵 아이와 아내에게 달려갔던 시간이 내내 삼년.
  저 혼자 좋아하는 흙놀음에서 살아가기 위한 업이 되어가니
  삐뚤했던 그릇이 바로 서고 꼴통다관 사람 손에 익으려고 애를 쓴다.
 
  한 겨울날 주전자 끊이는 소리 그리워 다시 놓은 연탄난로 개스에 힘든 겨울 보냈어도 작업실의 나는 행복하다.
 내 그릇에 기뻐할 이도. 팔아 기뻐할 이도,

 작업실 창 너머 사랑하는 사람들. 창을 통해 나와 그들을 바라 볼 수 있었기에 아집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가둔 은둔의 공간에서 자신의 자유를 얻고 멀리 세상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했던 곳.
 그곳이 나의 작업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