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전체이자 일부로서의 순응


“본인의 작업은 스스로의 삶 안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는 곧 자연만이 우리 삶에 대한 궁극적 해답이라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흙을 작업의 토대로 삼는 도예가에게조차 자연적인 삶은 매우 생경하고도, 어색한 것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간혹 이런 삶을 추구하고자 하더라도 비사회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귀한 구경거리 정도로 전락하는 경우를 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얼마나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매일 매순간 사람들은 자연을 찬양하고, 갈구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요란스러움만큼 자연에서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당초 자연 또는 자연적 삶을 사는 일이란 도시에 공원을 하나 더 만들고, 아파트 베란다에 식물을 하나 더 들임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에 이미 들어있는 자연성을 일깨우고 그에 순응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다. 본인의 작업은 바로 이런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연”, 즉 자연의 일부로서 스스로를 파악하고 순응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2003년도부터 시작된 ‘알 연작’은 이른바 ‘삶의 근원’ 혹은 ‘자연성’에 대한 내적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알에는 생의 모든 과정이 응축되어 있다. 즉 그것은 삶이 시작되는 발원지이자 고대 옹관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알’은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된 ‘자연적 본성’을 일깨우는 원형적 매개다. 여기서 ‘자연적 본성’이란 구체적으로 가능한 인위성 혹은 기계적 편의주의가 배제된 삶, 즉 자연의 일부로 환원된 삶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비, 바람, 햇살, 흙 그리고 온갖 생명체들은 자연이라는 하나의 집을 이뤄 서로 어우러지고 또 스러져가면서 순환을 기꺼이 반복한다. 


    2005년 이후 시도한 ‘결 연작’들은 그러한 자연의 또 다른 형상화다. 항아리, 발, 다구 등 도자의 전통적 형태들과 조화된 결은 본인의 자연관을 대변하는 상징적 표출이기 때문이다. 기물의 표면에 새겨진 비정형적인 결들에는 바로 무질서 속의 질서, 즉 카오스모스(chaosmos)로 규정될 수 있는 자연적 여정을 담아내고 또 이에 순응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자연은 결코 먹고 먹히는 거대한 먹이 사슬의 구조, 곧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다. 자연적 여정 안에서 너와 나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이로써 만물은 순환 상생한다. 


    2006년 이후 시도된 '결' 연작위에 원시 생명체의 돌기형체는 무생물체와 생물체의  조화, 하나의 자연을 상징하게 된다. 즉, 갯바위에 붙은 생명체는 각기 자신의 몸에 맞추어 자리를 잡고 상생의 우주를 만들어 낸다. 생명체는 '인'이 되고 바위는 '연'이 되니 이것이 곧 '인연'이고 하나의 우주인것이다.   '무엇인가 떨어지다' 의  연작은 자연을 바라보는  사색의 시작을 의미한다. 사색의 도구로 원시적 돌기가 사용된 것은 원시생명체의 본성 (식욕, 배설욕) 만이 존재하는 사색의 '대비형상'이기 때문이다.  사색이 가져다 준 인류의 선물은 지구역사의 작은 점으로 존재하고 그 댓가만이 현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러니를 인식한다면, 오직 자연적 본성을 가진 생명의 형체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전제를 가지게 된다. 


    근래에 들어 작업 중인 '생각하는 개'는 개를 통하여 인간과 자연의 매개체로 사용된다.  개는 인간사회의 밀접한 생활 형태를 가지면서도 인간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간직한 듯하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인류는 계몽의 시민사회를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계몽은 개척'으로 '개척은 발전을 위한 개발'로 '개발은 파괴'로 이끌어 낸 것을 보면 개의 사색은 곧 그 자신의 본성을 포기하는 것 '죽음'을 뜻하게 된다.

 본성을 바라보는 것은 곧 '자기성찰' '깨달음'이라는 대의적 주제아래 놓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하는 의지, 삶의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본성은 그 힘을 발휘한다. 자신은 곧 자연의 의지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전체이자 일부로서 순응하는 삶”은 도예 작업의 안과 밖에서 스스로 품고자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화두다.



Adaptation as a part and whole of nature

 

 

My work is a succession of processes of observing and understanding nature inside my own life. This namely comes from my belief that nature is the ultimate answer to our lives.

 

We are living in times where natural life has become very unfamiliar and awkward, even to potters whose works are made of earth. We sometimes try to pursue such life, but we soon find ourselves branded as un-social people or made a show of before other people. Then, we can easily see how far modern times have moved from nature. Every minute and every day, people praise nature and desire to be in it, but we are instead becoming alienated from nature, even though their prayers may be loud.

 

Nature or living a natural life is not possible by merely creating one more park in the city or having one more potted plant on the veranda. It is possible only when we evoke respect for nature already in our minds and adapt to it. My work starts from this recognition. In other words, my work is a manifestation of my will to identify myself as part of nature and adapt to it.

 

The 'Egg Series', on which I started working in 2003, is a result of my inner contemplation on the 'origin of life' or 'naturalness'. Of all things, the entire process of life is condensed in an egg. It is the source from which life starts and also the destination (end) of life, as we can see in urn burial from ancient times. In this respect, the 'egg' is an archetypical medium that evokes 'respect for nature' inherent in our lives. Here, 'respect for nature' does not means the artificial or convenient living afforded by machines: it means life reduced as a part of nature. There, rain, wind, sunlight, earth, and all creatures build one house called nature, and they intermingle and collapse, willing to repeat the cycle.

 

Since 2005, I have made 'Grain Series,' another realization of nature. Grains harmonized with traditional forms of ceramics such as jars, bowls, and tea utensils are symbolic manifestations of my philosophy of nature. The atypical grains engraved on the surfaces of vessels depict order within disorder, that is, a natural journey that can be defined as chaosmos, and my determination to adapt to it. Nature is never a huge food chain characterized by eat and be eaten, that is, the law of the jungle where only the strong can survive. In a natural journey, the lives of you and me depend on each other, and by doing so, everything in the universe circulates in win-win situation for all.

 

The life adapting as part and as whole of nature is the first and last topic I aspire to realize inside and outside of my ceramic work. Ancient times provide another motif to my work as a model where such life is possible. In this context, the ancient painting carved on the rocks suggests the matrix for concrete form for my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