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외톨이, 김대웅이 빚은 무유도자기
-언어 이전의 본능의 소리를 담은 그릇
                    
                                                                                                                허은순_동화작가 기획자

 김대웅의 그릇을 처음 보았을 때, 내 눈에는 흙투성이 상처투성이 아이였다. 한바탕 마을 잔치가 벌어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차게 서있던 외톨이였다. 색동옷 비단옷을 입지 않았어도 내 눈에는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이리 저리 거칠게 파인 흙길을 지나니 부드러운 능선이 펼쳐진다. 제주 오름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나와 아이를 감싸 안았다.

 김대웅이 빚은 무유찻사발의 선은 오름 같이 고요한 선이다. 가끔 돌멩이가 발끝에 채이지만, 그것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선. 구불구불 돌아가는 물길 같은 선. 요동치는 잡념의 소리조차 바람 소리로, 파도 소리로 바꿔 버리는 선이다.

 주물주물 빚은 찻잔를 손 안에 쥐어본다. 손톱으로 긁었는지 나뭇가지로 팠는지 알 수 없지만, 무심하게 그어놓은 선이 만져진다. 형식과 틀을 허물고, 위선과 아집을 밀어내는 선이다. 비뚤어진 선에서 소리가 만져진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소리다.

"찍! 찌이익!"

 땅이 갈라지고,

"슥 스윽."

생명들이 솟아난다.

"휙!"

 세찬 바람이 불어

"툭!"

 돌멩이가 떨어진다.

 외톨이는 자주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것이다. 아무도 상처투성이 아이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웅크려 울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마음을 후벼 판다. 세상을 향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아픔이다. 자신이 빚은 그릇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걸 작가는 알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문자를 보냈다.


'찍찌익 그은 선을 보고 있으면 소리가 들려요. 언어가 발달하기 이전의 소리요. 그 선이 가끔 마음을 후벼 파요.'
'제 옹알이를 담아보긴 했는데 까꿍이에게 배워서.'



 옹알이였구나. 그 사람에게는 마흔이 넘어 얻은 아들이 있다. 어린 아들이 옹알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구나. 그래서 단박에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게지. 사람들이 들어주든 들어주지 않든, 끊임없이 웅얼거리고 있었던 거다. 그건 본능이니까.

 그 다관도 그렇게 만들었겠지. 깊게 패인 상처를 그대로 둥그렇게 말아 만든 무유 다관. 커다란 흉터가 돌처럼 굳어버린 다관. 그 다관은 '상처는 나의 힘'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기꺼이 내 상처를 내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용기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한다. 건강한 상처, 아프게 아름다운 상처다.


 무유도자기라고 했다. 유약을 바르지 않는다? 신라시대 토기를 구울 것도 아니면서 유약을 바르지 않겠다니. 장작이 타서 재가 되고, 재가 그릇에 붙고. 또 타고 붙고, 그러기를 사흘밤낮이란다. 이런 꼴통을 보았나! 쉽게 가지. 참 어렵게도 간다. 누가 '꼴도방' 김대웅 아니랄까봐. 왜 그러고 있나 하니 자연에서 가져온 것으로 도자기를 만들되, 자연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심사다. 자신은 그저 빚을 뿐, 흙은 흙의 속성에, 불은 불의 속성대로 그대로 맡겨버린다. 가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통가마에서 꼬박 사흘을 견뎌야 한다. 불이 꺼지고 가마를 열면, 그릇들은 본디 가지고 있던 물성을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 모든 생명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색깔 옷을 입은 것은 색깔 옷을 입은 대로, 흠이 난 것은 흠이 난 대로, 이지러진 것은 이지러진 대로 어느 것 하나 억지스러운 것이 없다.

 그야말로 천지불인 (天地不仁). 렛잇비(Let it be)라도 불러야 하나? 천지불인을 몰라도, 렛잇비를 몰라도 어려울 것 없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라구!'

 이 말이다. 이런 사람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다. 어차피 출발이 달랐으니 도착지점도 다를 테니까. 반드시! 아니, 내 믿음과는 상관없이 김대웅은 자기 길을 갈 것이다. 렛잇비를 부르면서.

 어느 날, 우리 집 문을 열어 보더니 대뜸 이런다.
"여기서 전시 한 번 할까요?"
"이런 데서 전시를 한들 누가 오겠어요?"

 갤러리가 모여 있는 번화가가 아닌데. 이런 작은 동네에서? 진심인가 슬쩍 떠보았는데, 그 사람은 벌써 '이 자리는 내 자리'로 마음을 굳힌 듯 했다.

"동네 전시회 하면 재미있겠는데요?"
 맘대로 하라지!

 지난 해 건축가와 '예술, 일상이 되다' 라는 프로젝트로 우리 집을 지었다. 돈이 없어 전시공간을 찾지 못하는 가난한 작가들에게 내주려고 만든 공간이 있었다. 그 곳을 용케도 알아본 거다. 임자 제대로 만났다!

 시작은 그렇게 단순했다. 사람이 찾아가는 갤러리가 아닌, 갤러리가 사람을 찾아오는 전시회. 동네 수퍼마켓 아저씨도 초대하고, 미용실 원장님, 정육점 사장님, 내 어린 친구들도 쫄지 않고 볼 수 있는 전시회. 예술이 밥 먹여주냐며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의 밥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전시회. 그런 판을 깔아보자는 것이었다. 삶과 동떨어진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평범한 일상으로 찾아온 작가의 도전은 신선하다 못해 발칙하다. 김대웅은 예술이 몸을 낮춰 우리 일상으로 다가와 사람들과 소통할 때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樂 달그ROCK!"

김대웅의 그릇을 만질 때 마다 아이가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외톨이의 장단에 아저씨 아줌마 꼬맹이들 할 것 없이 온 동네에 춤사위가 넘쳐나겠지. 이제 외톨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고 오름에 오를 것이다. 바람이 그들을 감싸 안아줄 것이다. 아이를 둘러싼 편견과 오해도 걷어내 줄 것이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너도 자연의 일부였다

                                                                                                                                  허은순 동화작가, 전시기획자


 

  물길로 물이 흐르고, 바람길로 바람이 분다. 물길 바람길 따라 생명이 흘러든다. 이름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숲을 이룬다. 그 숲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곤충들이, 새들이 깃들어 살며 뭍 생명들이 서로 의지한다. 지음 받았던 모습대로, 있던 자리에서 서로 어우러져 숨쉬고 산다. 무엇 하나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살며시 감춘다.

 참,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에서 온 것이고, 자연을 닮은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다른 생명 없이는  사람의 생명도 없다.

  도자기는 흙, 물, 불이라는 자연 요소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으나 불이 있어야 하고, 그 불은 나무를 불살라야 한다. 자연에 빚을 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연에 미안해질 수 밖에 없다. 가마 안에서 타들어 가는 나무를 볼 때 마다 불 때는 사람은 심장이 타들어간다.

내 작업이 다른 생명과 맞바꿀 만한 작업이던가?

심장이 조여온다.

타고 남은 재처럼 내 작업도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

 통가마를 사흘밤낮 때는 동안 불꽃처럼 만 가지 욕망이 솟아올랐다가 사그러진다. 불이 꺼졌을 때 비로소 잡념도 다 타버리고, 눈을 감는다.

 

 

 웅크리던 연탄 난로 옆에서 추위를 견디던 날, 우연히 발견한 통가마 도자기 사진 한 장이 김대웅의 본능을 깨웠다. 본능에 이끌려 작업 하다보니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삶이 되어버렸다. 손 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불 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김대웅의 통가마 안에서 나온 그릇이 내 밥상과 음식과 어우러진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참, 자연스럽다.

 

많은 것들이 세상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통가마도 그렇다. 어쩌면 김대웅의 작업도 잊혀질 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통가마 작업을 떠났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본능에 이끌려 통가마를 다시 지어 불을 피울 것이다. 어떤 나무는 가마 안에서 재가 되고, 어떤 나무는 씨앗을 퍼트려 다시 싹을 낼 것이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남이…..

 참, 자연스럽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배반했으나, 자연은 인간의 본성을 일깨운다. 사라졌으나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니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김대웅이 통가마 앞에서 욕망을 불태우며, 나무를 불사르며 구워낸 그릇도 눈에 띄지 않는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서 ‘너도 자연의 한 부분이었다’ 말한다. 재가 될 인생들에게 욕심내지 말라 말한다.